카라탄바 혼죠조

2014. 5. 14


카라탄바 혼죠조를 마셨다. 원래 주말에 느긋하게 마시려 했는데... 집에오니 벌써 개봉해놓은 ㅡㅠ...
혼죠조라는 편견에 플레인요거트향을 예상하고 향을 맡았을때 선명하게 느껴지는 원료 곡물향이 느껴졌다. 아차 싶어 준슈인가 하고 입에대고 한모금하니 여운없이 드라이하게 넘어간다.
나중에 찾아보니 니혼슈도 +7에 정미율 70%사케다. 뒷맛이 깔끔하게 넘어가니 깜짝 놀랐다.
이정도 혼죠조면 꽤 괜찮은 사케다 싶었다.
사시미나, 캐주얼한 음식하고 상당히 잘어울리는 초심자용 사케같다. 깔끔하다

쇼치쿠바이미오(澪、Mio)

2014. 5. 8작성


어버이날도 다가오고 해서 뻔한 케이크에 샴페인보다 뭔가 색다른게 없을까 해서 진짜 우연하게 찾았다.
松竹梅 澪 (쇼치쿠바이 미오) 스파클링 사케다. 우리나라에는 소개된지 1년정도 되었는데 아직 지방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없는 사케다.
사실 미오는 후츠슈다. 보통주이지만 주정은 안들어갔고, 과당등의 첨가물 때문에 후츠슈가 된것이지 쌀과 쌀누룩만을 사용했기에 준마이나 마찬가지로 보면된다.
다행히 니혼슈코리아에 전화하니 대구에 재고가 딱3개있다고해 백화점 문닫기전에 급히 찾아가 사왔다.
스파클링사케이기에 개봉한직후 바로 마셔야 그맛을 느낄 수 있다. 식전 혹은 식후주로 마시면 아주좋은데, 오늘은 식후 디저트용으로 마셔봤다. 니혼슈도는 거의 -20이상은 될듯 단맛이다.
처음 향은 전형적인 소슈의 플레인요거트 향이 강하지만, 마시는순간 사과 배 아카시아등 다양한 과일, 꽃의 달콤한 단맛이 뒤이어진다.
가족들이 모여서 샴페인대용으로 한잔하면 어떨까...? 재미있는 사케다!

'술(酒)이야기 > 사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쿠츠루 긴조 나마쵸조  (0) 2015.08.15
카라탄바 혼죠조  (0) 2015.08.15
준마이750  (0) 2015.08.15
하쿠츠루 준마이다이긴조  (0) 2015.08.15
키키사케시(KIKISAKE-SHI)취득  (0) 2015.08.15

준마이750

2014. 5. 4에 쓴것


병으로 만든사케중에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月桂冠(월계관)의 준마이슈 준마이750이다.
준마이는 순쌀로 만든것이고, 750은 병의 용량이다. 미국 월계관 양조장에서 만들기에 일본제품보다 훨씬 저렴한가격에 준마이슈를 만들 수 있는데 이유가 몇가지 있다.
첫째는 미국주세법은 주정을 첨가하는순간 증류주로 분류되어 세율이 급상승한다. 따라서 소주나 혹은 국내주정첨가된 청주류가 약주류보다 미국에선 세금이 더 비싼 것이다. 그래서 준마이슈를 만드는게 유리하다. 두번째는 한미FTA 영향이며, 그다음은 미국산 쌀이 일본산 주조호적미보다 단가가 훨씬저렴하다. 2005년이후 개정된 주세법에 의해 일본에서는 주조호적미를 쓰지않고 도정제한없이 주정첨가만하지않으면 준마이슈라 불릴수 있기에 가성비 좋은사케이다.
그런데... 니혼슈도가 +15나 되어 마셔보니 상큼한 과일향을 느끼기도전에 쓴맛이 다가온다. 소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마시기 차라리 나을 것 같다. 그대신 준마이슈라 아주 깔끔하다. 솔직히 쿤과 준의 모든요소를 갖추고 있는 사케라 생각한다. 여운은 준의요소가 강하지만 그렇다고 향기성분이 전혀없진않다. 차라리 여기서 보이는 무침회 종류나 튀김류도 좋지만, 느끼한 미국식 버터사용한 스테이크와 먹어도 깔끔함으로 어울릴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격대생각하면 준마이급에선 꽤 괜찮은 술이다
+_+

'술(酒)이야기 > 사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쿠츠루 긴조 나마쵸조  (0) 2015.08.15
카라탄바 혼죠조  (0) 2015.08.15
쇼치쿠바이미오(澪、Mio)  (0) 2015.08.15
하쿠츠루 준마이다이긴조  (0) 2015.08.15
키키사케시(KIKISAKE-SHI)취득  (0) 2015.08.15

본질이라는것과 술의관계

술(酒)이야기 2015. 8. 15. 18:12



오리지널이라는것은 참중요하다. 원래는 술이야기를 안하고 이이야길 하려했는데 자연스럽게 하게되었다.
나는 술을 잘 못마신다. 그리고 많이마시지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술을 남에게 함부로 권하지도 않고, 마시더라도 못마시니 이왕마시게 된다면 같은값에라하면 굳이 괜찮다고 생각되는걸 "찾아서" 마시게 되었다.(물론 이와같은방식이 반드시 옳은것은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술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당연히 어느정도 이제는 답을 알게되었지만 말이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마시는것을 좋아하지만 "제대로" 된술은 안마시려할까...?
그 중 하나로 이번에는 위스킬 꼽으려 한다.
와인은 테루아 라는게 있다. 그땅 그 기후 그 토양이 포도의 열매의 맛을 결정짓고 와인의 맛을 결정한다. 물론 대부분의 양조주는 사실 테루아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위스키는 증류주임에도 테루아가 있다. 그런데 이는 우리가 평소 흔하게 즐기는 블랜디드위스키가아니라 싱글몰트위스키에서 느낄 수 있다.
발렌타인30, 로얄살루트38, 죠니워커 블루라벨... 이런술을 생각하면 다들 태어나 한번쯤은 마셔보고 싶거나 혹은 마치 구시대적 산물처럼 마이더스가된 기분으로 나도 부자인양 느끼게 하는 블랜디드 위스키다. 물론 이 술들이 결코 나쁘다는것이 아니다. 거친성격의 위스키를 블랜딩해서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짜는것이야 말로 멋진방법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리지널"이라 할 수 없다. 여러 양조장의 여러곡물로 만든 위스키를 섞엇기 때문이다. 원래 위스키는 아쿠아비타라는 어원처럼 생명의 물로 불리면서 중세시대에 흔히 구할 수 있는 여러 곡물들로 만든 술이 그기원이다. 그중에서도 스코틀랜드에서는 보리가 대량으로 식용으로 쓰이면서 위스키가 탄생하였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바로 100%보리로만 만든 위스키이다.
술을 조금이라도 관심있게 마시는사람은 일반맥주와 보리 100%의 All Malt Beer의 맛을 분명히 구분할 것 이다. 위스키역시 마찬가지다. 맥주도 쌀이나 전분으로 맛을 입맛에 맞게(?) 조절하듯 위스키도 이러한 과정을 겪은것이 블랜디드위스키다. 향은 당연히 싱글몰트가 좋을 수 밖에없는것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커티샥은 블랜디드중에서도 라이트한 위스키다. 오크통의 숙성기간이 6년정도의 위스키다. 가운데의 맥캘란은 하일랜드 최고의 위스키로 12년산만되어도 그향이 꽤 성숙하다. 이런술은 폭탄주에 말아서 없애는게아니라 스트레이트에 따뜻한물을 섞어 딱 1잔만 마셔야 그풍미를 느낄 수 있겠다. 글렌피딕15년산은 솔라시스템으로 만든술이라는데 그건 둘째치고, 스페이사이드를 대표하는위스키라 보면된다.
소주도 에틸알콜
맥주도 드라이, 아니면 옥수수전분
청주도 주정과같은 에틸알콜덩어리
위스키도 블랜디드
어째... 우리들이 좋다고 마시는술은 오리지널이 하나도 없다...
그나마 음용의 폭이 비교적 넓다 할 수 있는 리큐어조차 에너지음료와 섞는다.
우리네 술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니지만 나라도 조금은 "진짜"를 찾으면서 오래 즐기고 싶다. 장사든 사업이든 "진짜"를 알면 오래간다고 한다. 내인생도 좀 그렇게 살고 싶다. 싱글몰트처럼...

'술(酒)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찜구이식만두 & 하이볼  (0) 2015.08.16
대만 망고맥주 / 복숭아맥주  (0) 2015.08.15
드라이(DRY)맥주의 실체를 보자!  (0) 2015.08.15
막걸리의 미래는 과연?  (0) 2015.08.15
사케  (0) 2013.05.12

하쿠츠루 준마이다이긴조

2014.4월 글입니다.


白鶴山田錦純米吟醸
하쿠쓰루 야마다니시키 준마이긴조
정말 기분좋게 마실 수 있는 술인것 같다. 구운안주랑은 잘안어울린다는 편견이 있어 꼬지전문 이자카야에서 몇가지 실험 해봤는데...
구운 은행, 구운토마토와 잘어울린다. 특히 선술집에서도 있는 토마토는 잘구우면 긴죠 특유의 향과 잘어울린다.
일본주도 +3 산도 1.4로 그야말로 스탠다드하게 즐길 수 있고, 효고현의 주조호적미 야마다니시키를 100% 사용했고, 정미율 60%의 전형적인 준마이긴죠다. 깔끔한 목넘김과 처음에 다가오는 상큼한 배향기가 꼬지같은 양념이 진한음식을 먹고난 후에도 입안을 씻어주는 느낌과 잘 정돈되는 느낌이 참 좋은 日本酒다.
일식전문 이자카야가 아니라면 신선한 샐러드나 라이트한 음식을 찾기가 상당히 어려운것은 분명사실이다. 하지만 생선도 소금으로 굽거나 야채종류도 마늘이나 단호박 감자보다는 토마토나 아스파라거스같은 줄기채소와 즐기면 본연의 향을 더욱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진한간장이나 버섯류와 먹는다해도 다음 음식을 먹을때 입안을 씻어내주는 효과도 있으니 깔끔하게 즐기기 더욱좋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좋다!!! 그리고 벌써 작년 灘(nada)의 양조장이 떠오른다.

'술(酒)이야기 > 사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쿠츠루 긴조 나마쵸조  (0) 2015.08.15
카라탄바 혼죠조  (0) 2015.08.15
쇼치쿠바이미오(澪、Mio)  (0) 2015.08.15
준마이750  (0) 2015.08.15
키키사케시(KIKISAKE-SHI)취득  (0) 2015.08.15

키키사케시(KIKISAKE-SHI)취득

2014.5 월 키키사케시(사케소믈리어 자격) 취득



주말이용해 서울 왔다갔다하며 얻은 결과... 그래도 보람이 있구나.

'술(酒)이야기 > 사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쿠츠루 긴조 나마쵸조  (0) 2015.08.15
카라탄바 혼죠조  (0) 2015.08.15
쇼치쿠바이미오(澪、Mio)  (0) 2015.08.15
준마이750  (0) 2015.08.15
하쿠츠루 준마이다이긴조  (0) 2015.08.15

드라이(DRY)맥주의 실체를 보자!

술(酒)이야기 2015. 8. 15. 17:53

이글은 2013년 6월 쓴글이며,
이글을 쓰기위해, 국내 하이트진로, 오비맥주, 그리고 일본 아사히 맥주에 참고문의하였으며, 만화 '맛의달인' 또한 참조하였음을 미리 밝혀둔다.


드라이맥주, 그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가 잘아는 드라이 맥주는 일본 A사와 한국H사의 제품이 있다. 물론 결론부터 말하면, 드라이맥주는 일반적인 맥주와 다른공정으로 만들어진 맥주다. 아 물론 우리나라처럼 맥아를 10%도 안쓰면서 드라이공법으로 만드는 맥주는...휴...한숨만나온다.
반도체나 혹은 첨단IT산업은 기업비밀이 있고, 그것이 기술력의 핵심이라 할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의 건강과 직결되는 식품(술,담배 포함)은 기업비밀이라는 것을 빙자해 성분을 속이거나 숨기는 것은 옳지않다고 생각한다.(물론 원천기술력은 비밀로하는것이 당연하다.)
그런점에서 드라이맥주는 알고 마시면, 더욱 좋을것 같다.
간단하게 비교하면된다. 마트에가서 아무 외국맥주를 하나고른다. 라거든 에일이든 상관없으나 올바른 비굘위해 라거를 고르자. 나는 일본S사의 P맥주를 골랐고, 한국H사의 D맥주를 드라이 대상으로 삼았다.
일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드라이라는 걸 만드는 나라가 한국과 일본 뿐이기에 비교하였다.(물론 영국에는 드라이맥주와 맛이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페일에일 맥주가 있긴함...)
S사의 맥주에는 물,몰트,홉,이스트(효모)만 들어있었다. 탄산이 있어도 강력하게 혀끝을 자극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H사의 맥주는 홉 보리(국산,호주산 섞음),이스트,"전분" 등이 들어간다. 전분...?
전분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옥수수전분을 쓰는곳이 많다. 즉 콘과 스타치가 들어간다.
마시니 첫맛이 알싸(?)하게 혀를 자극한다. 시원한여름에 마시면 이느낌이 더위에 지친 목을 자극할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뒤이어 쌉사름한 쓴맛과 뭔가 가벼운 느낌, 그리고 쇠(?)맛? 이 낫다. 숟가락을 입에물어보니 드라이맥주와 숫가락이 맛이 똑같았다...
왜 그럴까...?
맥주는 맥아 즉, 보리가 싹을 틔우는 과정에서 나오는 당화 및 발효를 통해 맥즙으로 만든다. 이과정에서 홉, 효모가 첨가하고 아미노산 등이 맥주를 만드는 구성요소가 된다. 그런데 드라이맥주는 일본A사의 경우 자체생산 318 고발효효모로 재료의 당화를 더욱 촉진시켜 일반맥주보다 더 빨리 더 많은 탄산가스와 알콜을 획득해낸다.
H사의 효모역시 자체연구개발이라고 주장한다...
그럼 간단한 결론이 나온다.
드라이맥주는
1. 고발효효모를 사용해 일반맥주보다 더빠르고 많이 맥즙의 당화를 촉진시킨다.
2. 그러므로 알콜도수는 일반맥주(4.5도)보다 높다.
3. 당화 및 발효과정에서 아미노산을 더 빨리 사용한다.
즉!!!
일반맥주는 100이라는 보리를 사용해서 만들면 드라이맥주는 잘나신 고발효효모덕분에 85~90정도의 보리면 만들수 있다... 라는 것은?
그렇다. 재료의 원가절감이다!!!
보리를 더적게 쓰고도 비슷한 퀄리티의 맥주를 만들 수 있다면? 대기업에서도 남는장사 아니겠는가...홉의 쓴맛을 받쳐줄 중심맛(쓴맛,단맛,신맛 등)이 없으니 그저 쇠맛나는 맥주인것이다.
그나마 일본맥주는 보리비율이라도 높으니 드라이라도 조금낫다... 그럼 보리비율이 극히 낮은 한국 드라이 맥주는...??
그저샤프하고 현대적인 이미지에 술을 선택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았으면한다.

'술(酒)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찜구이식만두 & 하이볼  (0) 2015.08.16
대만 망고맥주 / 복숭아맥주  (0) 2015.08.15
본질이라는것과 술의관계  (0) 2015.08.15
막걸리의 미래는 과연?  (0) 2015.08.15
사케  (0) 2013.05.12

막걸리의 미래는 과연?

술(酒)이야기 2015. 8. 15. 17:50

이글은 2013.5 월 쓴것을 편집 작성한것 입니다





막걸리가 주춤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한류열풍을 타고 막걸리가 최근 5-6년간 "잘"팔려 온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막걸리 주요 수입국인 일본의 엔저와 국내 영세규모의 막걸리 업계의 타산성문제, 이에따른 기업식 논리의 원가절감위한 원재료 삭감으로 막걸리는 일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 주요 주류 즉, 소주, 맥주, 막걸리의 수출량 역시 급감하는 추세이다. 그리고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수입맥주 및 사케가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내생각으로는 타겟팅의 문제라 생각한다. 한류열풍을 타고 막걸리를 팔 생각이었다면, 주식의 단타처럼 짧은 시간에 유행일때 판매한후 접어야한다. 물론 영세적인 기업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공부"해야한다. 잠시 이야기가 빗나가겠지만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기존의 가진것을 빼앗기기싫어하는 본성에 기인한다. 세계는 무한자유경쟁이며, 이기기위해서는 공부하고 노력해야한다. 공부하지않고 기득권을 잃을것 같으니 반대하는것은 패배자의 변명일 뿐이다... 잠시이야기가 어긋났지만 막걸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본놈들은 최소한 자기네들의 니혼슈 즉 사케에도 다양한 등급과 맛, 도정율, 아미노산도, 니혼슈도, 스윗과 드라이의 차이, 원재료의 차이등 다양한 품종으로 고객의 니즈에
부합하려한다. 그럼에도 일본자국에서는 사케가 점점 하락세이다. 그런일본시장상황에서 단지 한류라는 이름만 걸고 아스파탐, 스테비오사이드등 화학조미료 범벅 막걸리를 누가먹을것이며, 증류식소주원액 1%도 안들어간 소주는 왜먹을 것이며, 보리비율 10%대의 발포주를 왜먹을 것인가???
그나마 이유는 딱하나 가격이었다. 단위가격당 알콜섭취의 금액이 납득할만큼 싼가격이었으니 외국사람들도 우리술을 마셨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기업은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집단이므로 제품의 질도 중요하지만 이익을 내는 것이 관건이다. 이익을 내기위해선 영업, 마케팅, 품질, 홍보 등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한데,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공산품의 특징은 품질은 온데간데없고, 유명인과 혹은 범용, 관습, 예전부터 이래왓던 타성에 호소하는 마케팅이었다. 그결과 소비자들도 똑똑한 구매자가 되지못하고 항상 그래왔던 것을 고르게 되는 것이다.
수입자동차가 10%넘을 동안 국내자동차 내수시장은 붕괴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품질개선보다는 마케팅과 프로모션으로 해결하려한다.
수입맥주가 국내맥주를 잠식하고 있지만, 맥주 양사는 자신들도 수입맥주 면허가 있어서인지 국내산맥주 보리비율을 미공개하고 밀가루 맥주를 만든다.
막걸리는 아스파탐 조미료 덩어리인걸 모르면서 마시면서, 사케는 보통주에도 조미료가 들어가는지 알지도 못하고 마시고 있다. 생산자, 판매자, 소비자 모두가 문제다.
더욱이 안타까운것은 수입맥주가 더 맛있어서 먹는다면서 그네들이 마시는 수입맥주를 보면 역시나 가격이 싸거나 혹은 국내공장에서 만들거나 혹은 전분이 들어간 수입맥주를 마신다. 라거와 에일의 구분도 모르고 그저 혀끝에 닿으면 좋은게 좋은거랍시고 마신다. 물론, 판매자입장에선 좋다. anheuser-busch inbev사는 아마 한국고객들에게 큰절을 할지도 모르겟다. 퀄리티는 모르고 그저 수입이면 오케이하고 마시는 소비자덕분에...ㅋ
사케도 주정이 들어간 사케는 청하와 다를게 전혀없음에도 뭔가 맛이 틀린것같다는 주관적인 정황증거로 단정지어버린다...
소주도 희석식과 증류식을 모르고 우리는 오늘도 "주정"과 "밀가루"를 먹으면서 "다이어트"걱정한다~
대~충 살려면 살면된다. 하지만 이왕사는거 알고먹으면 더좋지 아니한가?

'술(酒)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찜구이식만두 & 하이볼  (0) 2015.08.16
대만 망고맥주 / 복숭아맥주  (0) 2015.08.15
본질이라는것과 술의관계  (0) 2015.08.15
드라이(DRY)맥주의 실체를 보자!  (0) 2015.08.15
사케  (0) 2013.05.12

대만고속철(THSR패스) 구입 TIP입니다.



이글은 네이버카페 '즐거운 대만여행~'에서 2014.7월 제가 대만타이페이현지에서 올린글입니다. 카페에서도 충분히 언급이되고 보충되어, 위키에도 소개될만큼 도움이 되어 찾으신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에 조금 더 내용을 보충하고 도움드리고자 제 블로그에 전문 및 추가사항을 올려봅니다.
많은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2015년부터 국내에서도 인터넷 등으로 하나투어에서 고속철패스권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편하게 구입하시고, 국내에서 미처 구입하시지 못한분들은 여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카페에서 몇번 찾아봤는데 없어서 제가 오늘 소화한 일정 언급해드리고자합니다.
대부분 이카페에서 대만여행계획하시는분들은 5일이내분들이 많으시고, 타이페이 인근여행하시는분들이 다수입니다. 하지만 사람욕심이 그렇지 않듯, 길든 짧든 대만에 왔는데... 다른도시도 한번 구경이라도해봐야지 하시는분들 많으실겁니다.
그래서 대만 남쪽 도시 타이중 타이난 가오슝등을 계획하시는분들은 여행 처음가시는분들이 아니거나 혹은 아예 대만으로 출국을 가오슝으로 하시는 분들일겁니다.
사실 저는 과거에 일본 JR패스로 신칸센을 몇번타봤기에 대만고속철도도 패스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여행떠나기전에 고속철 홈페이지를 보고 3일권 2400불 판매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만, 이것이 국내에 팔지않는다는 이유로 국외 사용자들의 전유물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대만관광청에 자문을 구하니
"한국관광객은 한국현지에서는 구입이 불가능합니다. 그대신 타이페이 오셔서 동남여행사에서 직접 구매하실수 있습니다"
라는 답변을 얻었습니다.
동남여행사는 타이페이 처잔역에서 탄수이선타고 2코스가면 나오는 쐉렌역 1번출구에서 80미터 정도 떨어져있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쐉렌역에서 출구나오시자마자 오른쪽으로 80미터쯤 가면 큰사거리 나옵니다. 그 사거리에서 그대로 직진해서 길건너자마자 오른편보면 세븐일레븐 보이고, 그 세븐일레븐 오른쪽에 빌딩입구 있는데 그 빌딩6층이 동남여행사입니다.
(*추가로 팁하나 더드리자면 쐉렌역에서 나오자마자 오른쪽으로 걸어가시면 빵집이 하나있습니다. 한글로 파인애플케익(펑리수)무슨 대회에서 1등했다며 써놨습니다. 그빵집 찾으셨다면 계속직진하시면 됩니다. 빵집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선물용으로 사오시는 펑리수들은 다 만들어져 포장된것을 우리가 먹는거지만 거기는 빵집에서 바로 구워서 나오는거라 퀄리티나 맛자체가 차원이 달랐습니다. ㅎ)
3일권 2400대만달러입니다(2015.8월현재)
*플랙시블 3일권(3일선택가능권) : 3200대만달러
일반열차(고속철, 츠창하오제외)5일권 : 2800대만달러
5일간 일반+고속철 같이이용권 : 3600대만달러(단, 고속철은 2일만 이용가능)




그리고 여행사에서 받은 패스권에 이름 여권번호 기재후 타이완처잔 고속철매표소에서 이를 제시하면 패스카드를 만들어줍니다.
궁금점 있으신것 추가올려드리겠습니다.
자유석 및 지정석 둘다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유석을 이용시엔 2번째사진에 있는 교부받은 패스권을 개찰구에 보여주고 통과후 열차 10~12호차에 앉으시면됩니다. 열차 출발 후 승무원이 물어보면 어디간다고 물어보는 것이니 어디간다고 말해주면됩니다.(타이중, 줘잉 등)
저는 주로 지정석을 이용했는데요. 지정석은 표사는곳에 줄선 후 차례가 오면 패스권과 함께 목적지를 말해줍니다. 그러면 몇시차를 탈것인지 알려주며 남은좌석 등을 보여줍니다. 그 후 원하는 시간대에 표를 달라고 하면됩니다. 시간이 20분이내 임박할 경우에는 3열에 앉아서 다소 불편하게 갈 수 있으나, 1시간 혹은 30분이상 남은 열차의 경우 2명이 간다면 2열좌석에 앉을 수 있을겁니다. 지정석의 경우 역무원이 패스권 뒷면에 여권같은 공란이 있는데, 여기에 날짜, 열차번호, 타는기차역, 목적지기차역, 열차번호, 좌석번호, 예약번호, 역무원 확인 스탬프 등을 기재 후 돌려줍니다. 이후 개찰구에서 패스권과 여권(보여달라는데도 있고 그냥 통과도 있습니다만, 왠만하면 보여달라고합니다.)을 보여주고 통과하여 기차에 타면됩니다.^^
저는 3일간 타이페이>타이난 왕복 타이페이>줘잉 왕복, 타이페이>타이중 왕복 등 6회이상 타보았습니다.
시내로 들어가는법은 다른곳에도 많이 있으므로 생략하겠습니다만, 간단히 알려드리자면
타이중고속철도 역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버스타는곳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THSR셔틀버스라고 써있는 버스가 몇대있습니다. 버스번호가 있고 옆에 셔틀버스라 되어있습니다. 2-3종류가 있는데, 동해대학까지 바로가는 버스있습니다. 고속철도 패스 제시하면 동해대학까지 타이중고속철역에서 바로 가실 수 있습니다. 또 한대는 타이중 중산공원, 즉, 타이중 시내로 가는버스입니다. 공자묘등을 가시려면 참고하시면됩니다.(가격은 무료입니다!!!ㅋ)
타이난고속철역은 일반철도역하고 바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일반철도역에서 타이난처잔까지 가실수있고, 타이난처잔까지 요금은 이지카드로 지불되니 부담없습니다.^^타이난 처잔에서 내리시면 길건너편에서 버스를 타시면 안핑구바오등으로 갑니다.
마지막 줘잉은 교통도 편리하고 가오슝MRT도 있으므로 어렵지않습니다. 컨딩등을 가시는분은 일반버스타러 나가듯이 출구나서면 나서자마자 컨딩가는 버스매표소 있습니다.
MRT는 역내에서 바로 연결통로로 이동하셔서 타실수있습니다. ^^

*추가 팁 드리겠습니다. 동남여행사 주소입니다.
台北市中山區中山北路2段71號 6F
(위 주소는 구글지도에서 그대로 붙이면 위치 확인가능합니다)
*我們想買兩張高鐵三日券 (우리 고속철도 3일패스권 2장을 구매하고 싶다)
저도 한문은 읽지만 중국어(대만)는 전혀할줄모르기에 대만관광청에 문의하고 얻은답변 여기에 붙여두겠습니다.
兩을 숫자로 一,二,三,四 등으로 적으시면 매수인듯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패스권을 구매하고 타이페이처잔에서 개통해 오늘 타이난을 다녀왔습니다. 내일은 가오슝을 가볼까합니다. 얼리버드등으로 고속철 티켓을 싸게구입하시는분들이 많지만
타이페이>가오슝(쭤잉) 편도가 1500불정도하는걸 감안하면 가오슝만 왕복해도 본전뽑는패스임을 알수있습니다.
다들 참고하시어 대만여행에 도움되길바랍니다

독도에 관한 짧은 내생각

내가하고 싶은 말... 2014. 2. 4. 15:36

*이글은 대학생활당시(2005년) 간단한 레포트로 내가 쓴글을 편집한것입니다.(펌은 출처를 밝혀주시길바랍니다.) 읽어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독도문제는 항상 이슈화 되었던 문제였던것 같습니다...대부분이 독도문제를 안용복이후 "근대"문제로, 1905년 을사늑약이후의 문제로 치부하는것에 안타까워 고대에서 근세에 이르는 시기의 독도문제에 대해서 정리한것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한번쯤은 나는 항상 한번쯤은 의문에 빠지곤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근·현대가 아닌 고·중세의 시기에도 영토의 구분이 명확하였는가? 에 대한 의문이다. 흔히 중·고등학교 시절에 보던 역사부도를 살펴보면, 각 나라별 영토와 그 크기가 나타나있다. 나는 항상 이런 부분이 의심스러웠다. 과연 고대나 중세의 각국의 영토는 실제로 역사부도 내용 그대로일까? 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내가 나름대로 고증을 하고 찾아본 고구려의 영토나, 백제의 영토도 사실은 역사를 얼마나 정확하게 실증적인 해석을 하고, 판단하기에 따라 다른 것인지 알게 되었다. 이렇게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이러한 시기는 오래된 일이라 역사적 근거가 상대적으로 미비하고, 오늘날의 영토의 개념과도 조금은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생각해볼 때 독도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독도가 일본과의 본격적인 분쟁의 결과로 나타난 것은 정확히 말해서 구한말의 시기부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이전의 시기에도 울릉도와 함께 독도문제는 일본과 우리나라간의 문제로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식민침탈의 시기부터 시작해서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문제가 서서히 들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평소에도 고·중세사를 좋아한 나로서는 이러한 독도의 문제를 역사적 근거를 들어서 한국의 영토임을 한번 입증해보고 싶었다. 특히 현존하는 거의 모든 독도의 문제를 다루는 서적과 논문, 그리고 여러 자료들이 단순한 일본과 한국간의 현재의 상황 속에서 분쟁의 문제와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역사적인 근거도 물론 고·중세의 내용은 많이 미약하지만, 대부분 근·현대사의 자료만을 취하고 있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기회를 통하여 흔히들 알고 있는 독도의 일본영유권의 문제에 앞서 보다 실증적이고 철저한 역사적인 증거와 사료비판, 그리고 독도의 가치에 대해서 논해보고자 한다.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부인하는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떠한 역사적인 근거로 독도가 한국의 영토인지 설명을 하라고 한다면, 아마 몇 명 말을 못할 것이다. 사실 독도에 대해서는 예부터 우리나라의 수많은 관찬, 사찬사서 모두 등장을 하고 있으며, 기록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일일이 파악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쉽게 알고 있는 부분은 《三國史記》에 등장하고 있는 이사부장군의 이야기일 것이다. 《三國史記》에 의하면‘여름 6월에 우산국 귀복하다. 우산국은 명주(현 강릉)의 정동에 있는 바다 가운데의 섬으로 혹은 이름 하여 울릉도라 한다. 고 되어있다. 울릉도라는 명칭과 함께 등장하는 우산국의 설명으로 이것이 가장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울릉도의 명칭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있다. 울릉도는 세월이 지나서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무릉도, 또는 우릉도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지만, 독도는 우산도라고 확실하게 조선시대부터 불리었으며, 또한 그것이 조선시대에 발행된 각 지도에서 등장하고 있다. 특히, 《萬機要覽》 군정편 (1808년 일본에서 편찬)에 이르길 ‘흥지지에 이르기를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지(地)이며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을 보면, 조선시대에 우산도라 부르던 독도의 명칭이 일본인들이 송도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독도가 적어도 조선시대 이전에는 우산도로 불렸음을 알 수 있으며, 예전부터 우산국이라 불리던 울릉도와 함께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써 이미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독도의 영유권 문제는 오히려 울릉도를 한국의 영토를 확실하게 인정함으로서 반박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울릉도가 한국의 영토임에 부인을 하는 국가는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다. 따라서 울릉도의 부속도서인 독도는 당연히 한국의 영토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언급을 하면 현재 일본이 부르고 있는 독도의 명칭 즉, 죽도라는 말은 원래 근대 이전에는 울릉도를 지칭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1880년대 일본해군이 울릉도를 정찰하고 나서 죽도에서 송도로 명칭을 변경한 이후에 울릉도가 송도가 되었으며, 이름을 상실한 독도는 서양 사람들이 이전시기에 발견한 이름인 ‘리앙쿠르 바위’로 지칭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구한말 시기에 이르면, 일본이 독도를 편입하기 위하여 죽도로 명칭하고 빼앗기에 이르지만, 적어도 그이전의 시기까지는 리앙쿠르 바위(rock)로 불리었던 것 이다. 여하튼 결과적으로는 《삼국사기》만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일본의 허황된 근거를 논리 있게 입증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肅宗實錄》의 안용복의 이야기에서도 울릉도에 속에 있는 부속도서로 송도 즉, 독도가 포함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世宗實錄》지리지에도 무릉과 우산의 명칭으로 각각 울릉도와 독도가 명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고대의 국가의 영토의 명칭과 그 강역은 얼마나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고증을 통해서 밝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짐을 알 수가 있다. 독도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며, 이러한 간단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독도가 이미 1500여 년 전에 신라의 영토에 포함된 우산국의 부속영토로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한국의 ‘고유영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시대에 신라의 영토로 편입된 우산국은 그 후 어떠한 발전을 하고 있었을까? 남북국의 시대에 울릉도와 독도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사서는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이미 신라에 편입된 우산국이므로 정기적으로 신라에 공물을 납부하고 생활해 나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신라의 군현의 일부로서 직할의 통치를 받았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高麗史》에 의하면 ‘왕(의종)이 동해가운데 울릉도라는 섬이 있는데 땅이 넓고 토질이 비옥하며 옛날에 주현을 두었고 가히 백성들이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신하를 파견하여 조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짐작하였을 때 이미 신라시대에 우산국은 신라에 편입되어 주현과 같은 중앙의 통치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발해와 울릉도 독도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사서도 전혀 없으며, 이야기도 없다. 하지만, 나의 추측으로는 독도가 분명히 발해의 사신들이 일본으로 건너가는데 있어서 중간기착지로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동국대 윤명철 교수의 《고구려 해양사 연구》를 통해서 동해바다를 항해하는 발해의 사신들과 고구려의 군대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이 책에 의하면, 북서계절풍이 부는 겨울철이 일본 쪽으로 항해하기에 쉬우며 동남쪽으로 항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베리아에서 부는 바람을 타고 발해의 남경(논란이 있으나 함경남도 북청으로 가정하자)에서 출항을 하면, 재미있게도 독도의 부근 해역을 지나게 된다. 물론 그 당시 울릉도는 사람이 사는 유인도이지만, 독도는 무인도였을 것이다. 따라서 발해인들은 독도를 찾아서 발견하였을 것이며, 이곳을 중간기착지로 사용하였으리라 생각된다. 19C 초의 여러 서구 열강들의 함대가 동해바다를 항해하면서 손쉽게 독도를 발견하였다는 사실에 미루어 보았을 때 당시의 발해인들도 어렵지 않게 독도를 찾았으며, 이를 활용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발해인들이 독도 쪽으로 항해가 가능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은 밑에 고려시대의 여진족과 관련하여 언급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신라를 이어받은 고려역시 우산국을 고려의 영토로 인식, 통치하였던 것이다. 물론 고려태조의 시기에 ‘울릉도가 방물을 바치고, 관직을 받았다.’는 기록을 보았을 때 고려태조가 처음 실시한 유화정책과 간접통치정책을 울릉도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우산국이란 명칭을 버리고 고려사에 울릉도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것은 이미 울릉도가 그의 부속도서인 독도와 함께 고려정부의 통제 속에서 국가개념이 아닌 군현, 또는 주현의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후 울릉도와 독도는 고려시대에 고려의 정책방향에 따라서 여러 가지방향으로 변화, 발전하고 있음을 파악해 볼 수 있다. 태조이후 현종 대에 이르게 되면, 여진의 침입으로 인해서 울릉도가 황폐해짐을 볼 수 있다. 소위 ‘동북여진’이라 불리는 여진의 무리들로 인하여 농업이 피폐해지고, 피난민들이 본토로 건너오는 일들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려조정에서는 관리를 파견하여 농기구를 지원하고, 울릉도에서 피난 온 주민들을 다시 귀환시키도록 왕명을 하달하였으며, 3년이 지나도록 귀환하지 않은 백성들은 관청에서 양식을 조달하고 예주(현 영덕)에서 살도록 하였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고려에서는 울릉도의 주민들을 국가의 백성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여진에 대비하여 울릉도 백성들을 구휼할 대책까지 세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파악해 볼 수 있는 한 가지는 울릉도까지 여진족들이 진출하였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진족은 기마민족으로서 배를 타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여진족이 배를 타고 울릉도로 와서 약탈을 하였다는 것은 여진인들이 발해의 옛 전통과 문화를 그대로 따랐다는 것으로 파악해볼 수 있다. 발해를 구성하던 피지배층은 대부분이 말갈족으로 여진이 이를 계승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여진족들의 일부는 발해의 항해술을 그대로 소지하였음을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앞에서 언급한 발해인들에 의한 독도의 중간기착지의 문제에 신빙성을 더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후 여진의 문제에 대해서는 고려정부에서 강력하게 대응을 하는 것으로 보여 지고 있다. 덕종의 치세에는 울릉도에 성을 쌓고 성주를 임명하는 등 강경책을 취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여진의 침입에 대비하는 한편, 중앙의 통치를 공고히 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여진의 침입도 사라지고, 다시금 평화가 찾아오게 되자, 정부에서는 울릉도를 명주도(강원도)에 속하게 하고, 지방 행정권으로 편입하였다. 그리고, 의종시대와 무인정권의 시대에 이르게 되면, 울릉도는 이전시기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 의견을 수용하여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섬의 정착을 장려하였다. 또한 최충헌도 진귀한 나무와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들을 울릉도로 보냈으나, 바다가 험하고 배가 항해하기 어려워서 포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려시대에 울릉도 독도에 관한 내용은 태조의 시기에는 지방호족들의 포섭과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울릉도를 똑같이 취급하였으며, 그 후 여진족의 울릉도 침입이후에는 백성들을 적극적으로 살도록 권장하면서, 울릉도를 요새화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 후 평화의 시기가 계속되면서 울릉도를 직접통치에서 명주도의 관할의 간접통치로 변환하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사민정책을 실시하여 백성들을 이주시키고자 노력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고려왕조의 노력과 결실이 울릉도와 독도를 계속하여 그들의 영토로 보존하고 노력하였음을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기록에서는 울릉도나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내용은 없으며, 오히려 울릉도의 주민들이 일본으로 표류하였는데, 이를 고려의 속민으로 표기하고 있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에 있어서 예전부터 우리의 영토임을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었으며, 명확한 역사적인 근거로서 울릉도와 독도를 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선시대에 이르게 되면, 좀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 독도를 이해하게 된다. 물론 조선왕조 초기에는 태종임금의 울릉도·독도의 공도화정책과 대마도의 정벌을 통해서 왜구의 방지와 울릉도·독도에 대한 통치권의 확립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세종대에 이르게 되면, 구체적으로 울릉도의 옆에 있는 섬인 독도에 대해서 인식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독도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이고, 확실한 인식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그 이후 안용복이 등장하기 전까지 삼봉도라 부르던 적도 있었으며, 삼봉도라 불리던 독도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쉽게 말해서 조선시대에 이르게 되면, 비록 공도화정책으로 인해서 울릉도와 독도에 주민들이 상주하지 않게 되었지만, 실제로도 몰래와서 살던 사람들이 빈번하였고, 또한 조선정부에서도 독도와 울릉도가 모두 조선의 영토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그리고 독도의 개별적인 섬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인 사안으로 이해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독도는 완벽하게 한국의 영토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